<함께 읽어요>
포노사피엔스 학교의 탄생 8화
모두가 미래학교를 말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이유
최승복(starwell)
(앞부분 생략)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패러다임 전환의 어려움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누차 강조하고 있다. 일례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일컫는 지동설의 등장 이후, 지동설이 정설로 인정받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천동설을 주장하던 학자들이 지동설의 타당성, 과학성을 인정하고 지동설을 지지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천동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서서히 사라져 가는 동안, 신진학자들이 지동설의 과학성과 설명력을 받아들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수가 되면서 서서히 지동설이 정설로 인정받게 되었다'라고 설파하고 있다. 기존의 천동설을 주장하던 학자들은 하늘을 겹겹의 천구로 설명하면서 예외적인 천체 현상을 새로 발견할 때마다, 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더 높은 곳에 또 한 겹의 천구를 늘려갔을 뿐이었다. 결국, 사람이 변한다는 건 죽기보다 어렵다고 말하는 듯하다.
(중략)
근대학교와 미래학교 사이에는 범주적 단절의 협곡이 있다
하지만, 지금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시대에 직면한 학교의 변화는 근대학교 도입기에 경험한 변화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가장 큰 어려움은 교육중심에서 학습중심으로 교육운영과 학교시스템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점에서 범주적 단절(categorical break)을 요청한다는 점이다. 근대학교의 주요 역할을 담당하는 교사는 잘 정리되어 있는 교육과정 상의 지식과 정보를 학생에게 잘 전달해주는 교육의 주체였다. 하지만, 미래학교는 근대학교의 주요 역할인 지식과 정보의 전달 자체를 부차적인 역할로 규정하면서, 학생이 주도적으로 지식과 정보를 활용 및 재생산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운용할 것을 요청한다는 점에서 학생, 학습자 중심 학교운영체제를 토대로 한다.
디지털 네트워크에 기반한 미래학교에서는 교사의 지식 정보 상의 우위가 보장되지 않는다. 왜냐면, 돈 탭스코트가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에서 설파한 것처럼 학생이 디지털 네트워크 활용에 교사보다 더 능숙하기 때문에, 청소년 세대가 교사 세대보다 지식과 정보의 검색과 활용에서 더 뛰어나다. 교육중심의 근대학교는 교사의 우월적 지위와 역할에 기반하여 운영되지만, 학습중심의 미래학교는 무한한 지식과 정보의 바다에서 더 빠르고 정확하게 검색하고 필요한 곳에 적실하게 활용할 줄 아는 학습자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근대학교의 교육중심, 교사우위 운영체제가 학습중심, 학습자 우선의 운영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은 범주적 단절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
두번째 큰 차이점은 전근대학교와 근대학교는 성인기를 준비하는 과정, 직업적 노동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구성된 기관이었다. 특히, 산업사회의 학교는 산업현장에서 정확한 시간 관념을 지니고, 지시와 명령에 따라 정확하게 작업하는 노동자를 훈련시키는 기관으로 설계되고 운영되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준비되지 않은 노동자, 미성숙한 성인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시대에 필요한 학교는 지식과 정보, 기술을 익혀두었다가 나중에 발휘해야하는 과정으로 운영될 필요가 없다. 학습자는 바로 검색하고 즉시 적용하면서, 지식과 정보의 유용성, 효과성을 검증, 확인, 재생산하는 과정을 수행하게 된다. 즉, 배워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활용하고 적용하면서 배우는 시대가 되었으므로, 미래학교는 활용과 실천의 플랫폼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미래학교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프로젝트" 플랫폼
현대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시대의 학교, 포노 사피엔스 학교, 미래학교는 사실 학교가 아니다. 인쇄지식 시대의 학교와는 전혀 다른 지식과 정보의 생산-재생산 시스템 하에서 작동하는 학교가 미래학교이기 때문에, 그동안 우리가 경험했고, 운영하고 있는 근대학교와 같은 학교라고 할 수 없다. 근대학교와는 달리, 교사가 주어진 지식체계를 따라 학생을 가르치는 학교보다는, 학생이 배우고 싶은 분야를 중심으로 스스로 찾고 활용하면서 실천하는 과정을 교사는 돕는 학교가 더 적실한 시대가 된 것이다. 교사와 학생의 역할이 반전된 공간, 학교의 중심점이 지식에서 학생의 욕망과 관심으로 변경된 관점, 교과목을 따라 구성되는 수업보다는 학생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시간을 요구하는 학교가 미래학교이다.
(중략)
범주적 단절과 퀀텀 점프가 절실한 한국 교육
한국의 근대학교는 근대학교의 틀과 시스템에 전근대적 내용을 담아 운영해왔다. 성리학 대신에 국가교육과정을, 사서삼경 대신에 국검정 교과서를, 과거제 대신에 수능시험과 고시제도를 대신 운영하고 있을 뿐, 지식이란 도서관에 저장되고 책을 통해 유통되며 결국은 개개인의 머리에 저장되어야한다는 신념에 기초하고 있는 학교체제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학교는 전근대적이다. 이제 지식과 정보는 클라우드와 네트워크에서 생산-저장-유통-재생산이 동시에 일어나며, 유무선 인터넷을 통해 스마트 기기를 거쳐 개개인에게 스트리밍되는 서비스로 전환되었다. 지금 한국 교육은 전근대적 교육체제에서 근대적 운영체제를 뛰어넘어 미래학교 체제로 도약해야하는 도전에 직면했다. 따라서, 전근대적 학교를 탈피하려는 근대적 교육운동은 모두 주소를 잘못 찾은 헛된 노력에 불과하다.
(후략)
http://m.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16014&SRS_CD=0000014562
기사 원문을 꼭 읽으시면 공부가 많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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